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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대왕의 아버지에 대한 사무친 그리움과 효심으로 만든 사도세자. 정조의묘 융건릉

국내여행

by * 춘호의 여행일기* 2016. 10. 11.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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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테가의 여행일기 입니다.


10월 9일부터 10월 9일까지 정조대왕 능행차가 진행되었습니다.


대한민국의 수도인 서울특별시에서 출발해서 경기도 수원시까지 이어지는 1박2일 여정의 길고긴 행사였었습니다.

 

서울을 시작으로 안양 - 의왕 - 수원까지 이어지는 성대한 빅이벤트이고 221년만에 전구간을 재현하는 정조대왕 능행차라 더욱 감회가 새로웠던것 같습니다.

 

정조대왕 능행차가 지나가는 도로에는 평생에 한번 볼까말까한 전구간재현을 보고싶은 시민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었습니다.


서울의강북구간은 창덕궁 (돈화문로)을 시작으로 종로3가역. 종각역. 을지로입구역. 한국은행앞. 숭례문. 서울역. 숙대입구역. 삼각지역. 신용산역. 한강대교북단. 강변북로 유턴지역. 배다리입구. 노들섬으로 이어지는 코스였습니다.

 

서울의 강남구간은 노들나루공원 (노량진로). 동작구청. 장승배기역. 신대방삼거리역. 보라매역. 구로디지털단지역. 시흥IC. 시흥사거리. 시흥행궁으로 이어졌습니다.  다음번에는 정조대왕능행차에 관한 포스팅을 올려보겠습니다.


이번에 작성할 후기는 경기도 화성시 효행로 (경기도 화성시 안녕동)에 위치한 융건릉 입니다.

정조대왕 능행차 덕분인지 사람들의 관심이 더욱 많은곳이 아닌가 싶습니다.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이번 융건릉 방문후기는 올초에 다녀와서 작성하였습니다.

 

융건릉은 크게 융릉과 건릉으로 나뉘어지며, 융건릉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UNESCO WORLD HERITAGE YUNGENUNG AND GEOLLEUNG ROYAL TOMBS) 으로 등록된 사적 제 206호 입니다.

 

융릉은 왕으로 추촌된 장조 (사도세자, 장현세자) 와 그의 비인 현경왕후 (혜경궁홍씨) 의 능이며, 건릉은 장조와 현경왕후의 아들이자 조선 제 22대왕인 정조와 효의왕후의 능이다.

 

장조는 조선 제 21대 왕인 영조의 둘째 아들로 어린 나이에 왕세자가 되었으나 영조와의 갈등으로 뒤주에 갇혀 죽음을 맞이하였다.   정조는 조선 제22대 왕으로 영조의 치적을 이어받아 조선 후기의 제도를 완성하였다.  특히 탕평책을 계승하여 당쟁을 약화시키고 규장각을 설치하여 문헌을 집대성 하였으며 억울하게 죽은 아버지의 복위에 노력을 기울였다고 합니다.

 

 

조선왕릉 분포도 (LOCATION MAP OF JOSEON ROYAL TOMBS) 입니다.

 

서울특별시 (강서구. 서초구. 성북구. 노원구) 과 경기도 남양주. 구리. 김포. 고양. 양주. 파주. 여주 일대에 분포하고 있었습니다.

신의왕후 제릉 . 정종후릉. 인조장릉. 파주삼릉 (공릉. 순릉. 영릉). 단경왕후 온릉. 서삼릉 (희릉. 효릉. 예릉). 원종장릉.  서오릉 (경릉. 창릉. 명릉. 익릉. 홍릉). 세조광릉. 정순왕후 사릉. 문종왕후 태릉. 명종강릉. 경종의릉. 성종 선릉. 중종 정릉. 태종 헌릉. 순조 인릉. 고종홍릉. 순종유릉. 세종영릉. 혀종영릉. 단종장릉. 동구릉 (건원릉. 현릉. 목릉. 휘릉. 숭릉. 혜릉. 원릉. 경릉. 수릉) 등의 위치가 표시되어 있었습니다.

 

 

융건릉 주차장에 주차하고 올라오니 멋있는 형상을 한 측백나무과인 수령 약 150년된 향나무 (CHINESE JUNIPER)가 있었습니다.  향나무는 나무 속살에서 강한향기가 내뿜어서 향나무라 부른다고 합니다.

 

향을 피우는 것은 부정을 없애고 정신을 맑게하여 천지신명과 연결하는 통로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신을 불러오는 매개체로서 제사를 드릴때는 반드시 향을 피우며 여러 종교의식에도 널리 쓰입니다.

속살이 붉은빛을 띤 보라색이므로 흔히 자단이라고도 부릅니다.

 

 

  

융건릉 매표소 옆에 문이 열려져있어서 안을 들여다보니 전통한옥으로 지어진 재실 (JAESIL) 입니다.

이곳은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지 아니면 통제구역인지는 몰라도 한산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자연의 섬리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아이들이 출가를하면 저는 전통한옥에서 살고싶습니다.

지금은 아파트에서 살고있지만 시골로 내려가 우리의 전통양식으로 지어진 한옥에서 지내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많이 해보았습니다.

 

아파트는 층간소음등의 문제로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지 못하는데, 전통한옥에 살면서 손자손녀들이 내려오면 누구의 눈치도 보지않고 마음껏 뛰어놀게 해주고 싶습니다.

 

  

 

깔끔하게 정돈된 한옥이 자꾸만 시선을 사로잡는것 같습니다.

 

어릴적 단독주택에 살때는 연탄보일러라서 아랫목이 따뜻한 아랫목에 가족들이 옹기종이 모여앉아 즐겁게 지냈었던때가 나이를 먹어가면서 더욱 그리워지네요.

 

 

 

조선왕릉 세계유산이라는 기념비가 큼직하게 세워져 있었습니다.

융릉. 건릉은 2009년 6월 30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제가 되었습니다.

 

" 조선왕릉인 융릉과 건릉은 세계문화 및 자연유산의 보호에 관한 협약에 따라 인류의 문화유산으로서 탁월한 보편적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게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세계유산 조선왕릉은 조선시대 왕과 왕비의 능 (40기) 으로 우리의 전통문화를 담은 독특한 건축양 식과 아름다운 자연이 어우러진 신성한 공간이며 지금까지도 이곳에서 제례가 이어져 오는 살아있는 문화유산이다." 라고 기재되어 있었습니다.

 

 

  

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 (UNESCO). 세계유산협약의 마크가 표시되어 있었습니다.

 

세계문화 및 자연유산의 보호에 관한 협약. 세계유산위원회는 조선왕릉을 세계유산목록에 등재함.

이 목록에 등재함은 모든 인류의 이익을 위해 보호되어야 할 뛰어난 보편적 가치가 있는 문화 및 자연유적임을 인정한다고 합니다.   하단에는 등재일자와 유네스코 사무총장의 싸인이 되어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참 많은것 같습니다.

 

얼마전에 베트남 하노이로 가족여행을 갔을때도 아들이 초등학교에서 배웠는지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 마크 보고도 알아보았습니다.

 

 

  

융건릉의 관람시간과 요금입니다.

 

융건릉주차장은 무료로 이용이 가능하고 이용료도 부담없이 저렴했습니다.

만24세이하 및 만 65세이상 내국인. 장애인. 국가유공자. 만6세이하 및 만 65세이상 외국인.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계층. 병역명문가. 학생인속하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교원 및 유치원등의 보육시설교사는 무료로 이용가능합니다. (단 신분증과 증명서. 확인서 소지재에 한함이라고 기재되어있고 화성시 지역주민은 50% 할인이 적용된다고 기재되어 있었습니다.)

 

융건릉은 상시관람권과 정기관람권도 판매하고 있으니 자주방문하실 분들은 참고하시면 좋을것 같습니다.

 

 

  

융건릉 종합안내도 입니다.

 

사진에는 융릉과 건릉의 정자각. 비각. 수라간. 곤신지 (연못). 화장실. 식수대. 천년지 (연못). 역사문화관. 재실. 주차장 등의 위치가  표시되어 있었습니다.

 

융건릉은 외국인 관광객을위해 종합안내도에 한글과 영어로 표시해 놓았습니다.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구입하고 안으로 들어오면 좌측에 융릉. 건릉 역사문화관 (YUNGENUNG AND GEOLLEUNG ROYAL TOMBS HISTORY CENTER) 이 있습니다.

 

 

 

융릉의 변천차를 표시해 놓았습니다.

 

사도세자 수은묘 (SUEUNMYO OF CROWN PRINCE SADO). 장헌세자 현륭원 (HYEOLLYUNGWON OF CROWN PRINCE JANGHEON). 장조융릉 (YUNGNEUNG OF KING JANGJO) 에 대해서 설명해 놓았습니다.

 

사도세자 수은묘는 "1762년 영조 38에 사도세자는 아버지인 영조와의 갈등으로 인하여 뒤주에 갇혀죽게 되었다.

영조는 세자가 죽은후에 사도라는 이름을 내렸고, 사도세자의 묘지명을 직접 작성하여 세자의 죽음을 애도하였다.

그리고 사도세자의 무덤을 현재의 서울시 동대문구 휘경동에 조성하였다.

사도세자의 무덤 이름을 정확히 정했다는 기록은 없으나 사도세자의 사당 이름인 수은묘가 무덤 이름처럼 사용되어 수은묘로 불리게 되었다."라고 지재되어 있었습니다.

 

장헌세자 현륭원은 " 사도세자의 아들 정조가 영조의 뒤를 이어 조선 제22대 왕으로 즉위하자 사도세자의 지위도 확립되었다.

정조가 즉위한 1776년에 사도세자를 장현세자로 올리면서 무덤 이름도 수은묘에서 영우원으로 올렸다.

1789년에 장현세자 영우원을 현 지역인 경기도 화성시로 천장하면서 영우원을 현릉원으로 고치고 병풍석과 무석인등 석물을 재조성하였다.  무덤 이름인 현륭원은 낳아주고 길러주신 현부에게 융숭하게 보답한다는 뜻이 담겨 있어 정조의 효심을 확인할수 있다." 라고 기재해 놓았습니다.

 

장조 융릉은 "고종은 대한제국을 선언한지 2년이 지나 1899년에 장헌세자를 왕을 일컫는 장조로 올리고 현륭원을 융릉으로 놓여 능으로 대우를 다하였다.

이듬해인 1900년에 고종이 장조 융릉에 표석 (비석)을 추가로 세웠는데 이때 표석 글씨는 고종이 직접 섰다.

따라서 현재 융릉 비각안에는 1789년에 세운 현륭원 표석과 1900년에 세운 융릉표석 총 2기의 표석이 있다.

융릉의 이름은 수은묘. 영우원.  현륭원을 거쳐 현재 융릉으로 불리게 되는데 융릉은 조선왕릉 가운데 능. 원. 묘라는 명칭을 모두거친 유일한 능이다." 라고 기재해 놓았습니다.

 

 

  

조선왕릉 공간구성 (COMPOSITION AND LAYOUT OF JASEON ROYAL TOMBS) 입니다.

 

사진에서 알수있듯이 조선왕릉은 곡장. 봉분. 병풍석. 난간석. 석양. 석호. 망주석. 혼유석. 장명등. 문석인. 무석인. 석마. 예감. 산식석. 정자각. 비각. 수복방. 수라간. 신도 어도. 판위. 홍살문. 금천교. 재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조선왕릉이 만들어지는 모습을 영상으로 볼수있게 해놓았습니다.

 

 

  

역사문화관 관람을 마치고 융릉과 건릉을 보기위해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저희가족은 융릉을 먼저 보기로 해서 융륭방향으로 향했습니다.

 

 

 

융건릉에는 산림전통 고유수종을 표시해놓은 사진이 붙어있었습니다.

식물들의 이름을 잘 모르는데 사진을 보니 도움이 되었습니다.

 

융건릉에는 가래나무. 귀릉나무. 무궁화. 보리수나무. 산뽕나무. 엄나무. 조팝나무. 참빗살나무. 갈참나무. 느티나무. 목력. 병꽃나무. 생강나무. 옻나무. 좀작살나무. 층층나무. 굴참나무. 노린재나무. 백송. 상수리나무. 산수유. 오리나무. 진달래. 팥배나무. 개암나무. 때죽나무. 복사나무. 산철쭉. 산당화. 자작나무. 철쭉. 화살나무. 개머루. 덜꿩나무. 붉나무. 소나무. 신나무. 졸참나무. 참느릅나무. 회나무. 국수나무. 물푸레나무. 백당나무. 서어나무. 산초나무. 자귀나무. 참죽나무. 횐작살나무가 있는듯 싶습니다.

 

 

 

융건릉을 방문할때마다 느끼지만 소나무가 참 많아서 좋은것 같습니다.

 

소나무에는 아토피에 좋다는 피톤치드가 뿜어내고 있어서 항상 상쾌하게 느껴지는듯 합니다.

 

  

 

소나무에 가려진 하늘의 모습입니다.

 

울창한 소나무가 하늘까지 가린것 같았습니다.

 

 

  

평일 방문이라 그런지 융건릉이 더욱 한산했었습니다.

가족단위로 여행오신 분들은 울창한 소나무숲에서 사진촬영도 하시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계셨습니다.

 

 

 

융릉이 얼마남지 않았습니다.

사실 입구에서 융릉까지는 약 10분에서 15분이면 도착할수 있는 거리인데 아이들과 함께 방문하면 걸음도 느려지고 호기심에 이것저것을 만지고 느끼느라고 시간이 조금 더 소요되기는 합니다.

 

 

 

12월 1일부터 익년 5월 15일까지는 건조기 산불예방을 위하여 산림산책로를 개방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산책로를 둘려보실분들은 이 기간은 피하시는게 좋을듯 싶습니다.

 

 

 

멀리서 바라본 융릉의 모습입니다.

 

 

 

정자각 입니다.

 

정자각은 건릉과 모양이 거의 흡사했었습니다.

정가각의 주축돌은 일부에서는 세월의 흔적을 느낄수 있었습니다.

 

 

 

  

정자각 안쪽의 모습입니다.

 

사찰등을 방문하면 흔히 볼수있는 모양인데 저는 이런 모양이 좋습니다.

 

 

  

정자각 내부에는 기신제때 상차림을 사진으로 표현해 놓았습니다.

 

집기류 배치도. 향상. 제상. 축상. 제수진설도. 제기류. 융릉 제향일정등을 알수있었습니다.

 

 

 

  

지붕위에 설치해놓은 조형물 입니다.

 

조형물의 형상이 정교하지는 않지만 왠지 정감이 가는것 같았습니다.

 

 

  

융릉의 모습입니다.

 

입구를 막어놓아서 융릉에 직접 갈수는 없었습니다.

어렸을적 국민학교 다닐때 융건릉으로 소풍을오면 묘지까지 올라갔었는데, 지금은 문화재를 보호하기 위해서 막아놓은것 같습니다.

 

융릉은 사도세자로 알려진 장조와 혜경궁으로 알려진 헌경황후 홍씨의 합장릉입니다.

 

소론계학자에게 학문을 배운 사도세자는 노록과 갈등을 일으키다가 1762년에 뒤주에 갇혀 죽게되었습니다.

정조는 사도세자를 장헌세자로 추숭하고 당시 양주에 있던 영우원을 이곳으로 옮겨와 현륭원이라 하였습니다.

1899년 고종이 장헌세자를 장조의황제로. 혜경궁을 헌경의황후로 추존하고 현륭원을 융릉으로 높였습니다.

 

봉분아랫부분은 십이지신상 자리에 모란과 연꽃 문양을 새긴 병풍석이 감싸고 있으며 봉분과 지면이 맞닿는 부분에는 화첨석을 깔아서 장식하는 등 정교한 조영 기술이 돋보입니다. 

융릉은 억울하게 죽어간 아버지의 넋을 위로하고자 했던 정조의 효성이 빚어낸 작품으로 조선왕릉중에 가장 아름답게 조성되어 있다고 합니다.

 

 

 

융건릉은 비공개 지역이므로 들어갈수 없다 (PLEASE DO NOT ENTER) 고 한글과 영어로 기재해 놓았습니다.

 

 

 

 

융릉 비각에 있는 표석입니다.

 

융릉에는 총 2개의 표석이 있었습니다.

 

"장조사도 수덕돈경 홍인경지 장륜융범기명창휴 찬원헌성계상현희 신문환무장헌 관효의 황제 묘도의 돌은 정조 선황제께서 친히 지으신 것이다.   을묘년 (정조 19년. 1795년)에 존호를 추상하여 장륜융범기명창휴라 올렸으며 철종 을묘년 (철종6년 1855년)에는 존호를 추상하여 찬원헌성계상현희라 더하여 올렸다.   광무3년 (1899년) 기해년 10월에는 왕으로 올려 추존하여 시호를 신문환무 장헌광효로 올렸으며 묘호를 장종에 봉하였다.  능호는 융릉으로 그해 11월에 추존했으며 시호는 가로되 의황제이고 묘호는 장조 이시다.

 

황호는 효강자희정선휘목유정 인철계성 헌경의황후 홍씨로 개국 344년 을며년 (영조11년 1735년) 6월 18일 탄생하시어 갑자년 (영조20년. 1744년) 에 세자빈에 책봉되었으며 임오년 (영조38년 1762년) 혜빈의 호를 받았으며 정조 즉위년 (1776년)에 궁호가 혜경으로 올랐고 순조 을해년 (순조15년. 1815년) 12월 15일 81세를 일기로 승하하여 이듬해 병자년 3월 3일 현륭원 좌측에 봉릉되었다.

 

을모년 (철종6년. 1855년)에 존호를 유정이라하고 광무3년 (1899년. 기해년) 10월 왕후로 추존하면서 휘호를 인철계성이라 올렸으며 시호를 헌경이라 하였다가 그해 11월 시호를 의황후로 추존하였다.

광무4년 (1900년)에 이제 또 비석을 세우니 공경하여 앞면에 추가로 휘음을 적어 놓는다." 라고 기재되어 있었습니다.

 

 

  

"장조사도 수덕돈경 흥인경지 장륜융범기명창휴 찬원헌성계상현희 신문환무장헌 광효 의황제 묘도의 비석은 정조 선황께서 친히 지으신 것이다.  을묘년 (정조19년. 1795년)에 존호를 추상하여 장륜융범기명창휴라 올렸으며 철종 을묘년 (철종6년. 1855년)에는 존호를 추상하여 찬원헌성계상현희라 더하여 올렸다.  광무3년 (1899년) 기해년 10월에는 왕으로 올려 추존하여 시호를 신문환무 장헌광효로 올렸으며 묘호를 장종에 봉하였다.  능호는 융릉으로 그해 11월에 추존했는데 시호는 가로되 의황제이고 묘호는 장조이시다.

 

황후는 효강자희정선휘목유정 인철계성 헌경의황후 홍씨로 개국 344년 을묘년 (영조11년. 1735년) 6월 18일 탄생하시어 갑자년 (영조20년. 1744년)에 세자빈에 책봉되었으며 임오년 (영조38년. 1762년) 혜빈의 호를 받았으며 정조 즉위년 (1776년)에 세자빈에 책봉되었으며 임오년 (영조38년. 1762년) 혜빈의 호를 받았으며 정조 즉위년 (1776년)에 궁호가 혜경으로 올랐고 순조 을해년 (순조15년. 1815년) 에 존호를 유정이라 하고 광무3년 (1899년. 기해년) 10월 왕후로 추존하면서 휘호를 인철게성이라 올렸으며 시호를 헌경이라 하였다가 그해 11월 시호를 의황후로 추존하였다.

 

광무4년 (1900년) 이제 또 비석을 세우니 공경하여 앞면에 추가로 휘음을 적어넣는다." 라고 기재해 놓았습니다.

 

  

 

2012년 10월 문화재청에서 국가중요시설물 지적기준점이라는 표석을 해놓았습니다.

 

 

  

수라간입니다.

 

수라간하면 제일먼제 대장금이 생각나는것 같습니다.

한류스타 탤런트 이영애씨가 장금이역을 맡아 열연했던 드라마인데 재미있게 보았었습니다.

 

  

 

사적 제206호 융릉 점자안내도 입니다.

 

 

  

융릉의 상세해설도 입니다.

 

곡장. 서호. 능상. 석양. 망주석등을 표시해 놓았습니다.

 

 

  

곤신지 입니다.

 

원형연못 곤신지는 융릉이 천장된 이듬해 1790년에 조성되었으며 곤신방 (남서방향)은 융릉의 생방 (풍수지리 용어로 묘지에서 처음 보이는 물을 지칭)으로 이곳이 좋은곳이기 때문에 파놓은 연못입니다.

 

 

 

추운겨울인데도 잔디가 파릇파릇하게 자라고 있었습니다.

 

잘려진 나무와 잔디가 대조적인것 같아서 사진촬영해 보았습니다.

 

 

 

 

건릉의 정자각 입니다.

 

정자각은 융릉과 모양이 거의 흡사했었습니다.

정가각의 주축돌은 일부에서는 세월의 흔적을 느낄수 있었습니다.

 

 

 

 

지붕위에 설치해놓은 조형물 입니다.

 

조형물 맨뒤에있는 용의머리 형상을 한 조형물이 세월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갈라지는건지는 몰라도 철사같은 부품을 이용해서 묶어놓았습니다.

 

  

 

건릉의 모습입니다.

 

건릉도 융릉과 마찬가지로 관광객들이 들어가지 못하게 막아놓았습니다.

 

 

 

건릉에 있는 비각의 모습입니다.

 

이곳에는 표석이 1개 있었습니다.

 

표석에는 "정조경천 명도흥덕현모 무열성인장효 선황제는 개국 361년되는 임신년 (영조28년. 1752년) 9월 22일에 탄생하시고, 기묘년 (영조51년. 1775년)에 정무를 대리 집행하고 병신년 (영조52년. 1776년)에 즉위하여 경신년 (정조24년. 1800년) 6월 28일에 승하하시니 재위기간 24년이고 수한은 49세이셨다.  그해 11월 6일에 화성의 융릉 동쪽 둘째 산등성이 해좌로 된 자리에 장사 지냈다가 신사년 (순조21년. 1821년) 9월 13일에 능의 오른쪽 산등성이 자좌언덕으로 천봉하였다.

 

광무3년 (1899년) 기해년에 존호를 경천명도흥덕현모로 추상했고 11월에 시호를 높여 선황제라 추존했으면 묘호는 정조이시다.

 

황후인 장휘예경자수효의 선황후 김씨는 개국 362년되는 계유년 (1753년) 12월 13일에 탄생하시고 임오년 (영조38년. 1762년)에 세자빈에 책봉되고 병신년 (1776년)에 왕비가 되시었다.  순조가 왕위를 이으시자 왕대비로 높여 되시었다가 신사년 (순조21년. 1821년) 3월 9일 승하하시니 수한은 69세이셨다.

 

그해 9월 13일에 건릉에 함께 봉분을 써서 부장되었다.

광무3년 (1899년) 기해년에 존호를 장휘로 추상했으며 그해 11월에 올려 추존한 시호는 선황후이다.

공경하여 비의 앞과 음기에 후비의 휘음을 적어 놓는다." 라고 기재되어 있었습니다.

 

 

  

사적 제206호 건릉의 점자 안내도 입니다.

 

 

  

건릉도 융릉과 마찬가지로 상설도 해설을 해놓았습니다.

 

건릉은 조선 제22대 임금 정조와 효의황후 김씨의 합장릉입니다.

1899년 고종이 정조를 정조선황제로 효의왕후를 효의선황후로 추존했습니다.

원래 정조의 능은 융릉의 동쪽 언덕에 있었으나 효의왕후가 승하하자 풍수지리상 좋지 않다는 이유로 이곳에 합장했습니다.

 

봉분을 병풍석없이 난간석으로 둘러싼것 외에는 규모와 형식이 융릉과 매우 비슷합니다.

문석인. 무석인은 조각이 매우 사실적이며 문인석은 금관 조복을 입고 있는 동 19세기 왕릉석물제도의 새로운 모범을 보여주고 있다고 합니다.

 

 

 

융릉과 건릉을 보고나서 집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길입니다.

 

아파트로 산책로를 이렇게 만들어 놓았으면 참 좋겠다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어떤꽃이 필런지는 모르겠지만 날씨와 어울리지않게 꽃봉오리가 피려고 합니다.

 

요즘 전세계는 기상이변으로 몸삼을 앓고 있는데 우리나라도 그런게 아닌가 싶습니다.

 

  

 

융건릉은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아서 반나절이면 충분히 관람을 할수 있습니다.

수원. 화성. 오산. 안양등 가까운곳에 사시는 분들이나, 유적지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께서 방문하시면 좋을것 같습니다.

 

융건릉주변에는 용주사도 있고 수원화성 까지의 거리도 멀지않아서 하루관광코스로 즐기기에는 알맞을듯 싶습니다.

융건릉주변에는 한정식등의 맛집도 많아서 아이들과함게 식사하기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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