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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수학여행의 추억을 떠올리는 경주여행 2탄 - 왕들의 숨결이 느껴질것 같은 경주 대릉원

국내여행

by * 춘호의 여행일기* 2022. 3. 16.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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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호의 여행일기입니다.

 

학창 시절 수학여행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경주여행 2탄은 경주 대릉원입니다. 

경주 대릉원 일원 (경주 황남리 고분군)은 경주시내 황남동 일대에 분포되어 있는 신라 초기의 무덤들로 일부는 대릉원 구역 안에 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붙여진 일련번호 90~114, 151~155호인 원형으로 흙을 쌓아 올린 30기의 무덤입니다.  큰 무덤은 돌무지 덧널무덤이고 주변에는 봉분이 없어진 작은 무덤이 있습니다.

대릉원 안에는 전 미추왕릉을 비롯하여 천마총. 황남대총 등이 있습니다. 
1973년에 발굴조사된 천마총은 지름 47m, 높이 12.7m로 금관을 비롯하여 많은 유물이 나왔습니다.
당시 천마도가 그려진 말안장 드리개가 출토되면서 '천마총'이라 이름하여 내부를 공개하고 있습니다.

 

 

황남대총입니다. 

왕릉 무덤에 연못이 있어서 경주 대릉원 대표적 포토존으로 알려져 있는 곳입니다. 

황남대총은 1973년부터 1975년 까지 발굴 조사된 황남대총은 남북 길이 120m, 동서 길이 80m, 높이 23m의 거대한 쌍무덤으로 남쪽 무덤에서는 금동관과 남자의 뼈 일부 및 많은 유물이 나왔다고 합니다.

북쪽 무덤에서는 금관과 '부인대 라는 글씨가 있는 과대' 등 많은 유물이 나왔습니다.
남쪽 무덤의 주인은 남자. 북쪽 무덤의 주인은 여자로 부부의 무덤을 붙여 만든 것으로 추청 된다고 합니다.

 

 

경상북도 경주 추천 관광지. 경주 맛집. 경주 볼거리. 경주 숙소. 경주 황리단길. 경주 추천 먹거리. 경주 황남빵 등의 후기를 계속해서 작성할 예정입니다. 

경주여행을 계획하신 분들은 춘호의 여행일기에서 작성한 게시글을 참조하시면 좋을 듯싶습니다. 

 

1. 지리적으로 경주관광하기 좋고 잠자리가 편한 경주 힐튼호텔 (HILTON GYEONGJU HOT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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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수학여행의 추억을 떠올리게 되는 세계문화유산 경주 불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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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릉원이 아니라도 대릉원 밖 금빛길 주변에도 왕릉인지 지체 높으신 양반가의 무덤인지는 모르지만 여러 구의 왕릉과 비슷한 크기와 형태의 능 들이 많았습니다. 

주변에 상가들도 양반집 같이 웅장한 기화 지붕을 하고 있어서 더욱 멋스러웠고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신라시대에 온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았습니다. 

능이 형성된 주변 하늘의 구름도 무언가 범상치 않은 듯한 회오리를 몰고 오는 형상의 구름이 있어서 더욱 경건하게 만드는 것 같았습니다. 

 

 

대릉원 입구의 모습입니다.

대부분의 분들이 일하러 가는 평일 여행이라 그런지 대릉원 안에는 방문객이 거의 없었고, 대릉원 안내도에는 대표적인 관광코스인 미추왕릉. 황남대총. 천마총을 표시해 놓았습니다.

대릉원이 왕들의 무덤이라고 생각하니 입구에서부터 왠지 더 경건해졌고, 왠지 발걸음과 언행도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적한 대릉원의 산책로는 깨끗하게 관리되어 있었고, 쭉쭉 뻗은 나무들의 모습이 내 나라 대한민국의 밝은 미래를 보여주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오랜 세월 모진 풍파를 겪어서인지 여러 방향으로 꺾인 소나무도 많았습니다. 

 

 

잘 가꾸어놓은 산책로를 걷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대릉원 관리가 잘 되어있었습니다. 
전국에서 이름만 들어도 알 것 같은 유명한 북한산 둘레길. 제주 올레길. 이효로 산책로라는 이름으로 유명해진 제주도 애월읍 한담 산책로 등과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 않을 것 같고, 요즘 미세먼지가 극성을 부리고 있는데 대릉원은 싱그러운 나무 냄새와 깨끗하고 시원한 산소를 마시면서 사람이 많지 않은 곳을 여유롭게 산책할 수 있어서 더욱 좋았습니다. 

대릉원 안에는 지나가다 흔히 볼 수 있는 바위들이 가지런히 정렬되어 있는 곳이 있었는데, 안내 표지판을 보니 석조유물이라고 기재되어 있었습니다. 
석조유물은 신라인들이 사용했던 초석. 장대석. 신방석. 기단석. 석탑 부재. 계단 소맷돌. 난간석 등의 건축 부재를 모아둔 것이며 경주시에서는 1980년대부터 경주시 여러 지역에서 수습된 석조유물들과 2008년부터 경주 시가지 일원에서 발굴된 각종 석조 유물을 대릉원으로 이전 보관해 오고 있다고 합니다. 

 

 

천마총에 다다르니 자연스럽게 발걸음이 멈춰지고 약간 긴장한 듯한 느낌이 들었고, 왠지 모를 강하고 좋은 기운을 내뿜는 것처럼 봉분과 구름의 조화가 환상적이고 왠지 신비스러운 느낌이 들었습니다. 

 

 

정면에서 바라본 천마총 입구의 모습입니다. 

천마총은 신라시대의 대표적인 돌무지넛널무덤으로 5세기 말 ~ 6세기 초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밑둘레 157m, 높이 12,7m로 비교적 큰 무덤이며 왕 또는 왕에 준하는 신분을 가진 사람의 무덤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무덤은 평지 위에 나무 널 과 껴묻거리 상자를 놓고, 그 바깥에 나무로 짠 덧널을 설치하여 돌덩이를 쌓고 점토로 꼼꼼하게 채운 후 봉분을 놓게 쌓아 축조하였습니다.

천마총 발굴조사는 황남대총 발굴에 앞서 발굴 경험과 지식을 쌓기 위해 계획된 것으로 1973년 4월부터 12월까지 약 8개월 동안 실시하였다고 합니다.
발굴조사 결과 유물 11,500여 점이 출토되었으며, 광복 이후 처음으로 신라의 금관이 출토되어 세상을 놀라게 했다고 합니다.  특히 자작나무 껍질에 하늘을 나는 말 그림이 그려진 말다래가 나와서 "천마총"이라는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현재 무덤의 내부구조를 볼 수 있도록 복원하였으며 출토된 주요 유물은 복제품으로 만들어 전시하고 있습니다.

 

 

경주 대릉원 천마총 재정비 완공 기념 개관  기념판을 설치해서 도움을 주신 분들의 이름과 소속을 기재해서 감사함을 표현했습니다. 

신라 천년고도 경주의 상징 천마총은 1973년 우리 고고학자의 기념비적인 경주고적 발굴조사단의 최초 발굴 현장이었으며 1976년 국내 최초로 고분 안을 전시공간으로 정비해 40여 년을 최초의 역사교육현장이자 수학여행단의 답사지로 그 역할을 다하였고, 이후 시설의 노후화로 2018년 경주시청과 문화재청이 다시금 전면 재정비를 통해 세계문화유산 국민 고분 천마총의 새로운 모습으로 단장하였다고 기재되었고 도움을 주신 분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고 적어 놓았습니다.

발주처는 경주시청 시장. 문화관광국장. 문화재과장. 문화재계장. 문화재과 감독관이며 감리단은 금성 종합건축사사무소였고 설계단은 동원 건축사사무소입니다.

자문단은 천마총 발굴단 자문 (1973년 발굴 참가자)인 전 국립문화재연구소장. 전 국립중앙박물관장. 전 국립경주 문화재 연구소장. 숭실대학교 사학과 명예교수. 계림문화재연구원 원장이며 천마총 재정비 자문위는 국립경주박물관 학예실장. 국립경주박물관 학예관.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학예실장. 한국 정통문화대학 보존과학과 교수. 경희대학교 건축과 교수. 문화재청 전문위원. 국민대학교 전시디자인 교수. 성림 문화재연구원 원장. 연합뉴스 문화부 부장입니다.

천마도 복제 자문은 원광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경주대학교 문화재학과 교수이며 금속유물 복제자문은 동국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 교수. 대전대학교 역사문화학교 교수님 등의 고마운 분들의 성함 등을 기재해 놓으셨습니다. 
세계 어느 곳에 내놓아도 자랑 그러고 소중한 우리나라의 문화유산 복원과 재정비를 위해 힘써주신 고고학자 등 많은 분들께 다시 한번 더 감사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1973년 천마총 발굴 현장 사진입니다.
학국 고고학의 개척자분들이 천마총에 모여 신라 왕릉급 천마총을 발굴했다고 합니다.
천마총은 기존 제155호분으로 불린 신라 왕릉급의 돌무지넛널무덤으로, 1973년 경주고적발굴조사단의 발굴 조사를 통해 마립간 시대 화려한 금관과 금제장신구 및 유명한 천마도장니가 출토되어 천마총으로 명칭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출토 유물을 보면 삼국시대 신라. 고구려. 백제 한민족간의 문화적 동질성을 보여주는 천마총의 유물도 있었고, 대외교류에 적극적인 고대 신라. 일본 오키나와와의 해양교류. 서아시아. 서역과의 육상 교류. 고구려. 백제와의 삼국내 교류가 있었던 것으로 보여준다고 합니다. 
천마총 출토 유물 중에는 신라의 것이 아닌 먼 외국에서 전래된 유물이나 자재 및 기술의 흔적이 보이는데 이는 신라 마립간 시대 대외교류에 나선 신라인들의 국제성과 외래문화 수용에 대한 적극적인 교류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특히 지중래. 서아시아에서 제작된 로만글라스와 실크로드를 통해 전해진 각종 공예 제작기술이나 오키나와 등에서 자생하는 야광조개와 일본산으로 추정 되는 경옥등으로 제작된 해양교류 유물들이 경주에 전해진 것은 천마총이 조성될 당시 마립간시대 신라의 외교와 교역의 범위 및 당시 신라 지배계층의 의지를 읽을 수 있다고 합니다.

 

 

목재로 만들어진 관 안쪽에는 천마총에서 발굴된 유물을 전시해 놓았습니다. 


신라의 왕이 안치되어 있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 두었는데, 옛날 왕들이나 지체 높으신 양반들은 화려한 것은 좋지만 순금으로 만들어진 왕관이나 허리띠. 귀걸이 등의 많은 유물들을 보면 저 무거운 것을 사후세계에 들고 가면 어떤 좋은 점이 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무덤 머리 쪽 방향에는 밥상과 냄비. 술잔 등의 가재도구도 많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신분이 높을수록 더 좋고 더 많은 것을 같이 묻어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승에서도 노자 돈 대신 자재도구를 함께 묻어준 것은 대접을 잘 받으라고 한 게 아닌가 생각되네요.

 

 

화려한 모양의 금으로 장식된 금동신발은  마치 운동선수들이 신는 스파이크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마음 한편으로는 죽어서도 저런 신발을 소유할 수 있다는 것이 왠지 부러웠습니다. 

 

 

대릉원 안의 포토죤 황남대총입니다.
 
이곳은 연못과 나무. 쌍봉 등이 멋스럽고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고 있어서 사진이 더욱 잘 나오네요.
릉 앞에는 파아란 하늘 아래 부부애가 애틋해 보이는 쌍봉 릉과 그 옆에 제주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돌담을 쌓은 연못이 있어서 더욱 멋스럽게 느껴졌습니다.
부부가 함께 안장된 무덤으로 추청 되는데 살아생전 두 분의 사이가 얼마나 애틋했고 부부애가 좋았으면 무덤도 같이 공유할까? 라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이승에서의 시간이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데, 나이를 점점 먹어가면서 시간이 마치 특급열차에 탑승한 듯 빨리 지나가는데 이제부터라도 좋은 일 많이 하고 행복하고 착하게  살아야겠습니다.

몇십 년 전 학창 시절 수학여행으로 방문했던 경주를 아이가 부모가 된 몇십 년 만에 또다시 방문해서 학창 시절의 추억을 생각하며 과거로의 여행을 다녀온 것만 같은 느낌이 드는 경주여행 만족스럽고 더 열심히 살걸 하는 후회를 하게 되는 여행지가 아닌가 싶습니다. 

황남대총 앞 벤치에 앉아 한참 동안을 멍하니 추억에 젖어 과거를 회상하니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고 즐거웠던 그 시절의 추억이 생각나서 좋았습니다. 

 

 

황남대총의 여운을 가슴에 고이담아서  자리를 떴습니다.
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오늘따라 하늘의 왜 이리도 파란지...

 

 

산책로를 따라가다 보면 주변에 크고 작은 봉분이 많이 있었습니다.


아쉬운 점은 어느 분이 잠들어계신 봉분인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이 조금은 아쉽지만 힘들게 발굴해서 이만큼 관리해 놓은 것도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람이 거니는 인도 폭을 반이상 차지하고 있는 신비로운 기운이 들 것만 같은 멋스러운 소나무입니다.
대릉원을 조성할 때 자연의 소중함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런 부분은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경주 미추왕릉입니다.

미추왕릉은 사적 제175호이며 신라 제13대 미추왕을 모신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미추왕은 경주 김씨의 시조 김알지의 후예로 제12대 첨해왕이 아들 없이 죽자 김 씨 가운데 처음으로 왕위에 올랐다 고 합니다.  여러 차례 백제의 공격을 막아내었고, 백성들에게 농업을 장려했다고 합니다.  

다음 왕인 유례왕 때, 청도의 이서국이 금성을 공격해 오자 대나무 잎을 귀에 꽃은 병사들이 홀연히 나타나 나라를 구하고 왕릉 속으로 사라졌다고 하여 죽장릉 혹은 죽현릉으로 불렀다고 합니다.
미추왕이 죽어 대릉에서 장사 지냈으며 왕릉은 흥륜사의 동쪽에 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미추왕릉 무덤은 경주 분지 한가운데인 대릉원 내에 있습니다.  능의 남쪽에 숭혜전이 있어 해마다 제향을 받들고 있습니다.  외형은 둥근 봉토분이며 발굴은 이러어지지 않았으나, 주변의 다른 무덤과 마찬가지로 돌무지덧널무덤일 가능성이 있다고 합니다. 

 

 

미추왕릉 봉분은 천마총이나 황남대총과 비교해서 크고 웅장하지 않았으면 주변이 왠지 휑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왕릉 주변에 담을 쌓아놓아서 인지 주변과 왠지 분리되어 관리되고 있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대릉원에서 좀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싶지만 짧은 여행 일정이라 그렇게 하지 못한 점이 아쉬워서 발걸음이 쉬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대릉원을 둘러보고 돌아가는 길의 산책로는 왜이리 짧게 느껴지는지 모르겠습니다. 
다음번이 언제일지는 모르겠지만 일정을 길게 해서 느린 걸음으로 천천히 경주여행을 다시 계획해 보아야겠습니다. 

 

 

춘호의 여행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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