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호의 여행일기입니다.
경기도 화성시 효행로에 위치한 융건릉입니다.
융건릉 앞에는 무료로 주차할수 있는 넓은 주차장이 있지만 방문객이 많을 때가 주차자리가 없으므로 조금 서둘러 방문하시는 편이 좋습니다.
융건릉 입장료는 대인 1천원이고 경기도 화성시 지역주민은 50% 할인된 500원이며 만 24세 이하 어린이 및 청소년. 만 65세 이상 국민. 만 65세 이상 외국인. 장애인. 임산부. 다자녀 부모. 국가유공자. 한복 착용자. 효행우수자.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계층은 무료로 입장하실 수 있습니다.
1개월 상시관람권은 1만 원이고 3개월 점심시간 10회 관람권은 3천 원입니다.
융건능 주변에는 왕릉닭한마리. 해장촌. 한국인의밥상. 어반촌. 상황삼계탕. 갈비탕. 한정식 등 맛집이 많아서 선택의 폭이 넓었습니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조선왕릉은 개성 재릉. 개성 후릉. 파주 장릉. 파주 삼릉. 남양주 광릉. 남양주 광해군묘. 남양주 사릉. 남양주 홍릉. 남양주 유릉. 구리 동구릉. 양주 온릉. 고양 서삼릉. 김포 장릉. 고양 서오릉. 구리 동구릉. 서울 연산군묘. 서울 태릉. 서울 강릉. 서울 정릉. 서울 의릉. 서울 선릉. 서울 정릉. 서울 헌릉. 서울 인릉. 여주 영릉. 영월 장릉. 화성 융릉 건릉이 있다고 합니다. 기회가 되면 전부 방문해 보고 싶습니다.
융건릉 입구 재실 입니다.
천연기념물 개비자 나무가 있었고, 담장에는 봄을 알리는 봄꽃이 피어 있었습니다.
기화 지붕과 멋스럽게 어우러진 노란색 산수유입니다. 산수유를 보니 이제 봄이 왔다는 걸 알려주는 것 같습니다.
봄꽃이 아름답기로 소문난 전국의 명소가 많은데, 그중 대표적인곳인 전남 구례 산수유축제. 서울 봉은사 홍매화. 전남 순천 금둔사 홍매화. 서울 청계천 하동 매실거리. 서울 올림픽공원 몽촌토성 산수유. 서울 여의도 샛강 생태공원 매화꽃. 전남 선암사. 경북 양산 원동 매화축제. 경기도 이천 산수유. 경남 산청 등이 아닌가 싶습니다.
경기도 수원에도 벚꽃 축제가 열리는데 기회가 되면 방문해 보아야 겠습니다.
융건릉 가는길 길에서 본모습입니다.
돌담과 기와. 양반들이 지체 높으신 양반이 살았을 것 같은 집. 위로 쭉쭉 뻗은 나무들. 정리 잘된 잔디의 조화가 참으로 아름다운 것 같습니다.
세계문화유산 조선왕릉 (WORLD HERITAGE ROYAL TOMBS OF THE JOSENO DYNASTY) 표지석입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일은 2009년 6월 30일입니다.
표지석에는 "조선왕릉인 융릉. 건릉은 세계문화 및 자연 유산의 보호에 관한 협약에 따라 인류의 문화유산으로서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세계유산 조선왕릉은 조선시대 왕과 왕비의 능으로 우리의 전통문화를 담은 독특한 건축양식과 아름다운 자연이 어우러진 신성한 공간이며 지금까지도 이곳에서 제례가 이어져 오는 살아있는 문화유산이다."라고 기재되어 있었습니다.
재실의 모습입니다.
재실은 사진으로 보는 것처럼 관리가 잘 되어 있었습니다.
재실은 제례에 앞서 제관들이 미리 도착하여 몸과 마음을 정화하고 제례를 준비하는 곳이며 평소에는 참봉 등 관리가 이곳에 상주하면서 능역을 돌보았다고 합니다. 주요 시설로 재실 외에 향을 보관하는 안향청. 제례 업무를 주관하는 전사청. 저기를 보관하는 제기고. 행랑채 등이 있었으며 단청은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재실 담벼락에 아름답게 핀 산수유꽃입니다.
노란색 산수유를 보니 왠지 마음이 설레고 기분이 좋았습니다.
잘 닦아놓은 산책로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건릉이고, 왼쪽으로 가면 융릉입니다.
저는 융릉 먼저 방문하였습니다.
융릉 가는 길입니다.
봄이 왔다는 걸 알리기라도 하듯이 담벼락에 이끼가 있었고 잔디로 파릇파릇했습니다.
융건릉에는 오래되고 커다란 소나무가 많아서 피톤치드를 마음껏 마시고 올 수 있어서 더욱 좋았고, 산책로 거의 대부분이 평지여서 아가들을 태우고 유모차를 끌고 다니기도 좋고 어린아이들과 함께 방문해도 무리 없이 거닐 수 있어서 좋은 것 같습니다.
나무들 사이사이에 벤치를 설치해 놓아서 깨끗한 공기와 아름다운 자연을 감상하면서 모든 걱정은 잠시 내려놓고 아무 걱정 없이 편하게 앉아 있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융건릉 산책로 폐쇄 안내문을 산책로 곳곳에 붙여 놓았습니다.
12월 1일부터 익년 5월 15일까지는 산불예방을 위하여 산책로를 개방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산책로는 융릉과 건릉 뒤를 돌아오는 코스여서 산책로 개방을 하면 다시 방문해야겠습니다.
융릉 앞에 서있는 홍살문입니다.
영혼이 출입하는 문으로서 홍전문. 신문 이라고도 합니다.
멀리서 바라본 융릉의 모습입니다.
융릉 추존 장조와 현경 황후의 능으로 장조는 영조와 영빈 이 씨의 아들로, 태어난 이듬에 왕세자로 책봉되었고 15세 때인 1749년 영조를 대신해 정사를 돌보았습니다. 그러나 아버지 영조와의 불화로 병을 얻었고, 노론세력과 정치적으로 대립하는 등 문제가 거듭된 끝에 1762년 왕세자의 신분에서 폐위되어 뒤주로 갇혀 세상을 떠났습니다.
영조는 아들의 왕세자 신분을 회복시켜 사도세자라는 시호를 내렸으며 아들인 정조가 왕위에 오른 후 장헌세자라는 칭호를 올렸고 대한제국 선포 후 1899년 장종대왕 으로 추존되었다가 곧이어 다시 황제로 추존되어 묘소를 장조라 하였습니다.
헌경황후 홍씨는 영풍 부원군 홍봉한의 딸로 1744년 왕세자빈에 책봉되었으며 남편인 사도세자가 세상을 떠난 후 혜빈에 봉해졌고 아들 정조가 왕위에 오르자 혜경궁이 되었습니다.
남편의 죽음에 대한 회고록인 "한중록"을 직접 스기도 하였고 대한제국 선포 후 1899년 헌경 황후로 추존되었다가 곧이어 황후로 추존되었다고 합니다.
1762년 사도세자가 세상을 떠나자 현 서울 동대문구 배봉산에 무덤을 만들고 이름을 수은묘라 하였고 정조 즉위 후에는 수은묘를 높여 영우원이라 하였습니다.
1789년 정조는 아버지의 무덤을 현재의 자리인 화산으로 옮겨 새로 조성하고 이름을 현륭원으로 바꾸었다고 합니다.
현륭원은 정조의 명으로 특별히 격을 높여 조성하여 봉분에는 모란과 연꽃을 조각한 병풍석을 두르고 무석인도 설치하였습니다. 1815년 헌경황후가 세상을 떠나자 이듬해 현륭원에 합장하였고 1899년 원을 능으로 높여 지금의 융릉이 되었다고 합니다.
정자각 뒤에는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사람들의 출입을 막기 위해 펜스를 설치해 놓았습니다.
나때는 말이야~~~ 라는 말을 하기는 싫은데, 어렸을 적에 융건릉으로 소풍을 펜스가 없어서 능 앞에서 친구들과 함께 이야기도 하고 즐겁게 놀았던 기억이 나네요.
정자각 앞에는 2개의 길이 있습니다.
좌측 길은 제향 시 향과 축문을 들고 가는 향로이고, 우측 길은 제향을 드리러 온 왕이 걷는 어로입니다.
저도 왕코스프레를 하기 위해 어로로 걸어갔습니다.
정자각입니다.
정자각은 제사를 모시는 건물로 제향 공간의 주임적 건축물이고 정청과 배위청으로 나누어지며, 두 개의 합쳐진 "정" 자같다하여 정자각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파아란 하늘과 기와지붕의 조화가 잘 어우려져 더욱 멋스럽게 보이는 어처구니입니다.
지붕 위 처마 끝에 나란히 서있는 어처구니이며 갖가지 형태의 상이 모여있다 하여 잡상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어처구니는 흙으로 만든 조형물로 익살스럽게 동물을 표현해 놓았습니다.
잡상은 궁궐 기와지붕의 추녀마루 위에 세워진 작은 토우로, 액운을 막고 악귀나 요괴가 감히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흔희 볼 수 있는 곳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궁궐은 창경궁. 경복궁. 창덕궁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융릉은 멀리서만 볼 수 있다는 게 조금은 아쉽지만 이렇게라도 관리를 해놓은 것은 잘한 거라 생각합니다.
융릉 뒤에 병풍처럼 쭉쭉 뻗은 소나무가 마치 신성한 왕의 능을 지키는 수호천사처럼 느껴졌습니다.
현륭원 표석과 융릉 표석입니다.
현륭원 비문 역문에 "사도 수덕돈경 홍인경지 장헌세자는 승정기원후 108년 1 월 21일에 탄생하였다.
처음 원자에 봉해지고 병진년에 왕세자로 책봉되었으며, 기사년에 대리청정의 명을 받았다.
임오년 윤 5월 21일에 홍서하였다. 나이는 28세이다. 시호를 추증하여 사도세자라 하였고, 7월 23일에 양주 남중량포 배봉산 갑자 언덕에 장사 지냈다. 소자가 왕위에 오른 해에 추존하여 시호를 장헌세자. 원호를 영우원이라 올렸고 계묘년에 존호를 수덕돈경이라 올렸으며 갑진년에 존호를 홍인경지라 올렸다. 기유년 10월7일에 수원 화산의 계좌 언덕으로 무덤을 옮기고 원호를 현륭원으로 고쳤다."
융릉 비문 역문에 "장조 사도 수덕돈경 홍인 지경 장륭융범기명창휴 찬원헌성계상현희 신문환무장헌광효의황제의 표석은 정조 선황제가 직접 쓴 것이다. 을묘년에 존호를 장륜융범기명창휴라 올렸고, 철종 을묘년에 존호를 찬원헌성계상현희라 올렸다.
광무 3년 10월에 왕으로 추존하여 시호를 신문환무장헌광효, 묘호를 장종, 능호를 융릉이라 올렸다. 같은 해 11월에 추존하여 공손히 시호를 의황제, 묘호를 장조라 올렸다.
황후 효강 자회 정선 휘목 유정 인철계성 헌경의황후 홍씨는 개국 344년 6월18일에 탄생하여 갑자년에 세자빈으로 책봉되고, 임오년에 혜빈의 칭호를 받았다. 정조가 을해년 12월 15일에 승하하였다. 나이는 81세이다. 병자년 3월3일에 수원 현흉원 합장으로 왼쪽에 장사 지냈다.
철종 을묘년에 존호를 유정이라 올렸고, 광무 3년 10월에 왕후로 추존하여 휘로를 인철계성, 시호를 헌경왕후라 올렸다.
같은 해 11월에 추존하여 공손히 시호를 의황후로 올렸다. 이번에 또 원래의 표석 다음으로 표석을 세워 전면과 추기를 공경히 써서 고종의 작의 정성을 표한다."라고 기재되어 있었습니다.
곤신지입니다.
곤신지는 1789년 융릉이 현 서울 동대문구 배봉산에서 현재의 자리로 옮긴 후 이듬해에 조성한 원형의 연못입니다.
조선왕릉 중 드물게 연못을 원형으로 조성한 곳으로 '용의 여의주'의 형상이라고 합니다.
이 연못은 남시 방향으로, 이 자리는 융릉의 생방 이기 때문에 연못을 조성하였다고 합니다.
곤신지 연못에는 형형 색색의 비단잉어들이 있었는데, 물은 깨끗하지 않았습니다.
융건릉 곳곳에 파릇파릇한 새싹이 올라오는 걸 보니 이제는 봄이 시작되었나 봅니다.
전국에 벚꽃. 매화꽃. 유채꽃 명소들이 많은데 올해는 가보지 못해서 많이 아쉽습니다.
쭉쭉 뻗은 나무를 보니 왠지 더욱 건강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끼로 뒤덮인 나무는 살아있다는 걸 알려주는 것 같았습니다.
예전에 일본 여행 때 유명한 관광지를 거닐다 보면 이끼로 뒤덮인 나무를 많이 보았는데, 개인적인 생각으로 관리가 잘 되었고 자연 상태를 잘 보존하고 있는 것 같아서 부럽다는 느낌을 받았었습니다.
건능 가는 길 파란 하늘을 촬영해 보았습니다.
나무 사이로 보이는 하늘과 나뭇가지의 조화가 잘 어우러져 더욱 멋스러웠습니다.
나무 앞에는 나뭇잎들이 수북이 쌓여있고, 그 앞에는 초록색 잔디가 올라오고 있는 모습을 보니 계절의 경계를 나타내는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건릉 앞 홍살문이고 그 옆에는 수라간도 있었습니다.
건릉 정자각의 모습입니다.
빨강색. 파란색과 황금색 잔디. 금방이라도 모습을 변화시킬 것 같은 구름의 조화가 잘 어우러진 것 같습니다.
건릉 정자각 위에도 융릉과 같은듯하지만 약간 다른 모양의 어처구니 있었습니다.
정조와 효의황후의 능인 건릉입니다.
건릉은 조선 22대 정조와 효의 황후의 능으로 정조는 황제로 추존된 장조와 헌경황후 홍씨의 둘째 아들로 1759년 왕세자에 책봉되었고 1775년 할아버지 영조를 대신하여 정사를 보았으며 다음해 영조가 세상을 떠나자 왕위에 올랐습니다. 재위기간 동안 아버지 장조의 명예 회복을 위해 노력하였고 영조의 탕평책을 계승하여 당파와 신분에 상관없이 능력을 통해 인재를 등용하였으며 규장각을 두어 학문 진흥에 힘썼고 친위부대인 장용영을 설치하여 군사력을 강화하였으며 수원 화성을 건축하는 등의 업적을 남겼습니다.
세상을 떠난 후 묘호를 정종이라 하였다가 대한제국 선포 후 1899년 황제로 추존되면서 묘호를 정조로 바꾸었습니다.
효의황후 김 씨는 청원 부원군 김시묵의 딸로 1762년 왕세손빈에 책봉되었고 정조가 왕위에 오르자 왕비로 책봉되었습니다. 정조와의 사이에서 자식을 낳지 못하였으며, 정조의 후궁 소생인 순조를 양자로 입양하여 왕위에 올랐습니다. 대한제국 선포 후 1899년 황후로 추존되었다고 합니다.
1800년 정조가 세상을 떠나자 융릉 동쪽 언덕에 건릉을 조성하였고 1821년 효의 황후가 세상을 떠나 건릉에 함께 모시려 했을 때 건릉의 원래 위치가 풍수상 불길하다고 하여 건릉을 현재의 자리로 옮기고 합장릉으로 조상하였다고 합니다. 문석인과 무석인. 장명등. 망주석 등의 석물 역시 그대로 옮겨 사용하였으며 융릉과 달리 봉분의 병풍석을 생략하고 난간석만 둘렀다고 합니다.
건릉은 멀리서 보면 조금 보이지만 가까이에서는 무석인. 석마 등의 조형물만 보여 아쉬웠습니다.
예전에 헌릉에 갔을 때는 능 옆에까지 올라가서 볼 수 있었는데, 융건릉은 능의 보호를 위해 막아놓아서 조금 아쉽게 느껴졌습니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조선왕릉의 구성은 ;
입구에 금천교를 만들었고, 홍살문. 재식. 판위. 향로. 어로. 수복방. 수라간. 정자각. 신로. 예감. 비각. 산신석. 무인석. 장명등. 문석인. 석마. 석상. 병풍석. 석양. 난간석. 석호. 망주석. 봉분. 곡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곡장은 봉분의 동쪽. 서쪽. 북쪽에 둘러놓은 담장이고, 봉분은 왕릉의 주인이 잠들어 있는 곳. 병풍석은 봉분을 보호하기 위하여 봉분 아래에 둘러놓은 돌이며, 난간석은 봉분을 둘러싼 울타리 돌이고 석양은 왕릉을 지키는 양모양의 석물이며 석호는 왕릉을 지키는 호랑이 모양의 석물이고 석상은 황의 혼이 노니는 곳이며 망주석은 멀리서도 능임을 알 수 있게 봉분 좌우에 세우는 돌기둥입니다.
장명등은 어두운 사후 세계를 밝힌다는 뜻의 석등이며 문석인은 관복을 입고 왕을 보좌하는 문인 모습의 석물이며 무석인은 갑옷을 입고 왕을 호위하는 무인 모습의 석물이고 석마는 문석인과 무석인의 뒤나 옆에 두는 말 모양의 석물입니다.
예감은 제향을 지낼 때 사용한 축문을 태우는 곳이며 산신석은 왕릉이 있는 산의 신령에게 제사를 지내는 곳이고 신로는 정자각 뒤에서 능상으로 향하는 왕의 혼을 위한 길이고 비각은 왕의 행적을 적은 신도비나 표석을 보호하는 건물입니다.
정자각은 제향을 지내는 건물이고 수라간은 제향에 올리는 음식을 준비하는 건물이며 수복방은 능을 지키는 수복이 머무는 건물이고 향로는 제향을 지낼 때 제관이 향과 축문을 들고 가는 길이며 어로는 왕이 제향을 올리러 올 때 다니는 길입니다.
판위는 왕이 능이 있는 구역에 들어서면서 경건한 마음으로 기다리는 공간이고 홍살문은 신성한 곳임을 알리는 붉은 기둥의 문이며 금천교는 능역과 속세를 구분하는 물길을 건너는 돌다리이며 재실은 왕릉 관리자가 지내는 업무공간이자 제향을 준비하는 곳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왕릉의 구성은 왕릉마다 다를 수도 있다고 합니다.
건릉 표석입니다.
건릉 비문에는 " 정조 경천명도홍덕현모 문성무열성인장효선황제는 개국 361년 9월 22일에 탄생하며 기묘년에 왕세손에 책봉되었고, 을미년에 대리청정을 하였다. 병신년에 왕위에 올라 경신년 6월 28일에 승하하였다. 재위는 24년이고 나이는 49세이다.
같은 해 11월 6일에 화성 융릉 동쪽 두 번째 산등성이 해좌 언덕에 장사 지냈다가 신사년 9월 13일에 융릉 오른쪽 산등성이 자좌 언덕으로 능을 옮겼다. 광무 3년 존호를 경천명도홍덕현모라 올렸고 11월에 추존하여 공손히 시호를 선황제, 묘호를 정조라 올렸다.
황후 장휘 예정자수 효의선황후 김씨는 개국 362년 12월 13일에 탄생하여 임오년에 세손빈이 되었으며 신사년 3월 9일에 승하하였다. 나이는 69세이다. 같은 해 9월 13일 건릉에 합장으로 장사 지냈다. 광무 3년에 존호를 장휘라 올렸고 11월에 추존하여 공손히 시호를 선황후라 올렸다. 전명과 음기를 공경히 써서 고종의 작은 정성을 표한다."라고 기재되어 있었습니다.
융릉과 건릉을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아쉬워서인지 발걸음이 느려졌습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방문했던 융건릉이었지만, 아버지에 대한 애틋한 사랑을 느끼기에 충분했던 융건릉이었습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비가 많이 내리는 날 나무도 빗물을 먹어서 더욱 파릇파릇해지고 나무향이 더욱 잘 느껴지는 날에 다시 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무에는 꽃망울이 수줍어하면서도 당당한 모습처첨 보였습니다.
시간이 조금만 더 지나면 활짝 핀 모습을 보여줄 듯싶습니다.
역사기념관에는 조선왕릉 분포도와 정조의 현륭원 거둥길. 세계유산 조선왕릉 융릉. 건릉의 자세한 설명. 장조와 헌경황후의 융릉에 대한 설명. 수은묘와 영우원. 현륭원. 현륭원의 조성. 건릉 초장지와 부장품. 왕릉의 공간 구성. 조선왕릉의 건립과정 등을 자세하게 볼 수 있도록 해 놓았습니다.
융건릉에서의 마지막 사진은 노란색 산수유꽃이 보면 볼수록 방문객의 시선을 사로잡는 산수유꽃으로 올려봅니다.
요즌 홍매화. 벚꽃 등의 관광명소에 상춘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는데, 소소하게나마 산수유를 보니 왠지 마음이 밝아지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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